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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건강, 삶

영화 ‘킬러들의 도시(2008)’ 자살하는 살인청부업자들

by 킴젬프 2024. 3. 16.

   
 

 

                                                                        인과응보로  넘쳐나는 도시,
                                                                그 곳에서 자살하는 살인청부업자들
 
 
  
자살과 살인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인이  반사회적인 일탈이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라는 것을  제쳐두고 나면, 말입니다. 두 가지가 공통으로 우리 인류의 존속에 위해가 되기에 가장 크게 비난 받고 처벌 받습니다. 살인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목숨과 더불어 모든 것을 영원히 잃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줄줄이 나오는 자살 역시 비명횡사에 가깝습니다.  인과응보로 인한 자살이기에 그렇습니다.
 

살인이 직업인 이들의 자살  

 
영화에 나오는 청부살인업자 3명은 모두 자살 경향이 상당히 높습니다. 원래 현실에서도 그 직업군의 사람들이 그러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평생 밥벌이인 사람들이 눈물에 젖어 후회를 하고, 동료 를 대신해서 스스로 죽고, 실수로 자신의 총에 누군가가 죽자 그만 그 자리에서 자신도 죽입니다. 
 
영화 초반, 벨기에의,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브루즈 (Bruges)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흐릅니다. 어느 오래된 성당에 걸린 중세 시대 유명한 종교화는 천사, 악마,  지옥, 천당 따위를 살벌하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육체에 가해지는 영원한 고통과  형벌도 매우 참혹하고 기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살인청부업자 일에 이제 막 뛰어든 레이몬드는 신자의 고해성사를  보겠다고 눈앞에  마주앉은 신부를  청부살인의 대상으로 죽이던  와중에, 어처구니없이 한 어린아이도  같이 죽이고 맙니다.  그로인한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레이몬드는 기꺼이 자살을 택하지만 그것도 쉽게 이루지는 못합니다. 
 
그는 영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고, 자신의 죽음 말고는 그 무엇으로도 참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을 살인청부업으로 끌어들인 동료 켄에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젊고 혈기왕성한 그는 새로 사귀게 된 예쁜 여자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들며 사랑하는 일상도 영위합니다. 죽고 싶으면서도 떡복이는 먹고 싶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한참 중년 나이의 살인청부업자 켄은 어설프게 첫 번째 살인 청부를 그르친 레이몬드를 죽여 없애라는 보스의 전화에 당황합니다. 하지만 살인은  켄의 평생 직업입니다.  망설임없이 작업에 나섭니다. 레이몬드의 등 뒤에 숨어서 총으로 그를 살해하려는 순간, 아무 것도 모르는 레이몬드는 스스로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자살하려 합니다.  켄은 당황하며 레이몬드의 자살을 멈춥니다. 돈벌이로 청부살인을 하며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하려는 이는 본능적으로 살리려 했나 봅니다.
 
레이몬드를 멀리 도피시킨 후에 켄은 자신이 어찌될지  뻔히 알면서도 보스 앞에  나섭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전망대에서 의연하게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살인청부로 살아온 악당 해리는 분노조절장애가 분명해 보입니다. 무도한 폭력과 살인을 밥 먹듯 해치우는 극악의 존재로서, 자신의 부하 켄과 레이를 제거합니다. 그러한 해리도 자신이 실수로 무고한 사람도 같이 죽였음을 보게 된 순간에는 아주 짧은 망설임 후에 스스로의 입에 총구를 들이밀고 자살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분노 탓에 그저 충동적으로 저지른 자살이었을까요? 글쎄요, 그는 이미 자신의 자살충동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 사람이 다 자살하고 싶어한다고 떠들어 댔었습니다.  
 

연기 혹은 인과응보

 
인연생기(因緣生起)란 인( 因 직접적 원인)과 연( 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러저러한 일을 하였기에 그에 따르는 결과가 생겨나며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해서 모든 것들이 인과응보입니다.
 
아주 많은 인생연기(연기)들이 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소소한 일상 속의 행위임에도 그 대가가 엄청나게 커다란 경우도 발생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결코 의도치 않은 치명적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살인 청부 업자들의 이야기이므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일상과는  다소 먼 이야기이어야 합니다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애먼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심지어 살인을 하는 부분 마저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런 탓에 배경이 되는 도시 브루즈 Bruges 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몰입 그 이상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영화 말미에는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 쉽게 연상되듯이 얼마간의 총질, 목숨을 건 뜀박질 그리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폭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과 자살이 한꺼번에 반전처럼 펼쳐집니다. 이미 영화 전체를 통해서 인과응보를 보아왔기에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끝맺음에는 벌써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 주인공 레이몬드는 온 몸에 총알을 맞고 들것에 실려 가면서  자신은 살고 싶다고, 정말로 살고 싶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살인자들에게 마땅한 그런 엔딩이어야만 할까요, 아니면  피범벅인 레이몬드를 보며 울부짖는 그의 아름다운 연인이 바라는 대로, 또한 켄 자신이  바람는 대로 되는 것도 역시 마땅한 엔딩일 수 있지는 않을까요 ?  
 
2024.03.09 - [이전글 보기] - 영화 '25시'(2002) 배신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