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시작부터 통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저런 모습을 잘도 잡아내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번의 '화이트 로투스' 역시 장면마다 등장인물마다 그러한 통쾌함으로 자리를 뜰 수 없습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통쾌하게 이어지지만 구석구석 가슴 아픈 스토리들도 깔려 있기에 더욱 더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흥미로운 여러 인물들
16살 퀸과 그의 누나 올리비아, 그리고 올리비아의 친구 폴라를 데리고 함께 휴가를 온 부부 마크와 니콜은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행복하고 부유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마크는 암에 걸려 죽게 되지나 않을까, 아버지로서 존중받고 있을까, 일에 성공한 아내에게 무시받는 것이 아닌가, 따위로 늘 기복이 심한 중년의 아버지입니다. 실언을 반복하고, 제대로 상황을 보지 못하는, 다소 모자란 그러면서 주변에 흔한 중년 남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니콜은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비즈니스 우먼이지만 큰딸 올리비아는 친구와의 우정에만 온 관심을 기울이며, 우정으로 일상을 채우느라 자신의 부모와 동생은 뒷전입니다. 아들 퀸은 오늘날의 많은 십 대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핸드폰과 게임에 몰두합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게임기를 잃어버리고, 우연히 보게 된 하와이 원주민의 카약 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카약 팀과 함께 바다를 휘젓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경험한 퀸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집에서의 자신의 일상은 자신에게 의미가 없음을 리조트 바닷가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로 깨우칩니다.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하고 화이트 로투스 리조트로 신혼여행을 온 셰인과 레이철.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는 레이철은 자신의 커리어를 전혀 무시하고, 아내의 생각과 의견보다는 자신의 소소한 욕망과 취향만을 고집하는 남편의 모습에 놀라고 실망합니다. 결혼 안에서 아내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철저한 마마보이였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도 그 끝을 보아서라도 결국 얻어내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혼여행까지 따라와 며느리를 트로피 와이프로서 자리매김해 주는 시어머니를 보며, 자신의 결혼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깨닫고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죽은 엄마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기 위해 바닷가 리조트로 찾아온 중년의 부유한 여인 탄야. 죽은 엄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그 유골을 뿌리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리조트 직원들에게도 주변 투숙객들에게도 자신의 슬픔만이 유의미한 듯 민폐를 끼치며, 자신의 삶 자체가 깊은 슬픔인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죽은 엄마의 삶과 마찬가지로 남자와의 데이트에는 온 신경을 쏟아붓습니다. 자신의 삶에 패턴이 있어서 그것을 깨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인데 운 좋게도 탄야의 패턴을 부수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함께 하와이를 떠납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까지
리조트 매니저 아몬드야말로 자신의 삶과 직업에 충실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보이는 듯하지만 소소한 직무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고 마약에 의지하는 인물입니다. 문제를 대면하기보다는 그저 회피하여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캐릭터인 셈입니다. 마약 탓에 마마보이 투숙객 세인에게 약점을 잡히고 또 마약 탓에 그의 객실로 무단 침입하여 결국 세인의 칼에 삶을 마감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습니다.
백인 친구 올리비아의 부모와 함께 휴가 여행에 따라 온 폴라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리조트 환영 댄스를, 백인의 약탈에 모든 것을 빼앗긴 하와이 원주민들의 비루한 굴복의 춤으로 해석합니다. 자신과 사랑에 빠진 리조트 직원이자 하와이 원주민인 카이를 설득하여 친구 엄마인 니콜의 보석을 훔쳐내도록 설득합니다. 충동적이고 어설픈 도둑질이 성공할 리 없어 카이가 쉽게 붙잡히고, 곧 사건의 전말이 들통나게 되는 순간이 다가오자 카이의 선물인 조개 목걸이를 바닷속으로 내던져 버리며 하와이를 떠납니다.
마지막 여섯번째 에피소드에서 퀸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와이에 남겠다는 자신의 뜻을 가족들에게 밝히지만 간단히 무시당합니다. 늘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기는 하지만 소통과 이해에는 매우 서투른 부모인 마크와 니콜은 나이 어린 십 대 아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하와이를 떠나는 비행기 게이트에서 퀸은 기회를 보아 부모로부터 도망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합니다.
삶이란 어때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 끼 식사를 하며,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병을 얻기도 하고, 또 죽음을 마주합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이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일관되게 필요한 것이 주변과의 진실한 소통이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진정하고 깊은 사랑과 이해이며, 서로 간에 주고받는 존경과 존중입니다.
대개 우리의 삶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성숙한 자세와 자기 성찰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아울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거니와 그것이 화이트 로투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매우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각 등장인물들의 연기가 너무나 훌륭하고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여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듭니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고 재밌기보다는 관객을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며 반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즌1에 대한 열렬한 평단의 호평과 일반 관객들의 요청으로 시즌 2가 제작된 것이야말로 당연합니다.
[ 이전 글 보기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충격적인 실제 이야기, 줄거리 및 작품 평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충격적인 실제 이야기, 줄거리 및 작품 평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를 딱 세 줄로 설명해 주세요. 버거운 현실과 평화로운 일상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을사람들이 동네 광장에서 성가를
annecy123.com
'영화, 라이프, 건강,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룸 넥스트 도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죽음에 대한 꿈, 줄거리 및 평가 (1) | 2025.01.30 |
---|---|
'브로크백 마운틴' 사회적 편견으로 억압된 사랑, 인물 및 작품 평가 (2) | 2025.01.27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충격적인 실제 이야기, 줄거리 및 작품 평가 (1) | 2025.01.22 |
'시빌 워' 슈퍼히어로 간의 강렬한 대립, 줄거리 및 평가 (0) | 2025.01.12 |
‘킬러들의 도시’ 인과응보로 넘쳐나는 도시와 살인자들 (0) | 2024.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