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건강, 삶

영화 '25시'(2002) 배신에 대한 이야기

by 킴젬프 2024. 3. 9.
 7년간의 감옥살이가 끔찍하지만
누군가의 배신은 훨씬 더 끔찍합니다
.  

 

 

영화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앞으로 들어가야 할 감옥이 얼마나 커다란 공포이고 두려운지를, 마약상인 주인공 몬티의,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촘촘하게 그려내는 것뿐입니다. 주인공과 소방관이었던 그의 아버지, 주인공의 절친 둘, 그리고 마약 거래 갱단의 일원이자 몬티를 배신한  러시아인 코스티아가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영화의 배경에 깔린 음악은 듣기가 불편할 정도로 심란하고 거북합니다. 배신감을, 공포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아마 그런 음악이 만들어질 듯합니다. 그런데 영화 감독 스파이크 리는 그 공포심을 빌려 상대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 배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배신, 그것이 두려워 거절했던 것뿐..

 

젊은 백인 마약상 몬티는 죽어가는 개를 보고 죽이려 했다가도 마음을 바꿔 개를 치료한 후 입양해서 기릅니다. 지난 5년간 같이 마약을 거래했던 친구는 쉽사리 외면하면서 배신했지만, 길거리 노숙자에게는 돈을 줍니다. 10대때부터 시작한 마약 거래 대금으로는 아버지에게 식당을 차려주어 아버지를 돕씁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돈에 대한 배신일까요

정작 본인은 학교 장학금으로 학비가 비싼 사립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러면서 부유한 집 자식들이었던 학교 친구들에게  학창 시절 내내  마약을 팔아 현재의 멋진 집과 비싼 차, 그리고 예쁜 여자 친구를 두고 살아갑니다.  

 

몬티의 친구이자 학교 선생인 제이콥도 세상을 배신합니다. 자식을 학교에 보낸 부모와 학교를 배신하고 자신의 평판을 배신하면서 술에 취한 미성년 제자에게 키스합니다. 클럽에서 여학생 제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어린 여학생을 마음에 품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척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배신했었습니다.

막상 마약에 취한 여학생의 유혹을 그가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그건  선생으로서의 도덕과 윤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자신이 미성년 여학생과 저지른 짓을 보고  탄로가 나서 직장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그것이 두려워 거절했던 것뿐입니다.     

 

몬티의 또 다른 친구, 프랜시스는 몬티의 인생은 감옥 탓에 이미 끝장이 났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막 막상 몬티 앞에서는 정반대의 말만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저지르는 배신 같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는 배신이며 상대에 대한 배신입니다.   

 

또한, 프랜시스는 몬티의 여자친구 내추랄이 몬티가 자살 따위 생각하지 않도록  몬티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부탁을 하자, 이 지경이 되도록 여친으로서 무엇을 했느냐며  거칠게 추궁하고 비난합니다.

몬티가 숨긴 돈과 마약의 위치를 경찰에 알려준 것이 바로 내추랄이라고 의심을 하고 있었으며, 그 의심을 내추랄 앞에서 그대로 드러냅니다. 내추랄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배신감을  느끼는 일입니다. 

 

제이콥이 가르치는 여학생, 메리(마리아)는 막상 자신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유혹하던 영어 선생이 선을 넘어 키스를 해오자 놀라서 얼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메리라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배신 행위만 계속 하던 인물이 막상  끝에 가서는 무슨 배신인지 알 수 없습니다. 

뉴욕의 911 -  미국이 믿었던 나라,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저녁 무렵 제이콥이 프랜시스의 고급진 아파트를 찾아 와서 둘이 술을 마시며 아파트 창문 아래로 폐허가 된 건물터를 내려다 보는 장면입니다. 익히들 알고 계시듯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한해 전인 2001년도에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비추는 그 폐허가 바로 그곳입니다. 

 

듣기에 심난스러울  정도의  배경 음악이 흐르면서 그곳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을 음산하게 비춥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도 드물게 미국의 편이자 우방이라고 여겨졌지요.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들은 실제로는 수준 높은 서방의 대학 교육을 받아 영어 구사가 자유로웠고 소위 금수저 집안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고작 그런 비행기 납치 테러로 목숨을 버릴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배신으로 읽힙니다.  

최후의, 마지막 배신 

 

감옥으로 가는 대신, 멕시코 국경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신분을 숨기고 지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몬티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내추랄이 몇 년 후에 자신을 찾아서 멕시코 국경의 작은 마을로 오고 둘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손주들을  낳아 행복한 삶을 늙도록 이어가는, 그런 꿈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맨 마지막, 아버지가 운전하며 가는 그 길은 여전히 어느 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몬티가 아버지의 절절한  뜻을  배신하며 그대로 감옥으로 향해가는 그 도로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어 배신감을 느낄 뿐입니다. 

 

 

 

2024.03.01 - [이전글 보기] - 영화 '보이후드'(2014) 오늘 미국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