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너무나 위험한 시련과 혹독한 혁명을 거치고 나서야 사랑으로 증명이 됩니다. 무수히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남편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이기적인 선택에 불과했던 결혼에 대한 댓가를 치룬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
1923년 런던의 사교계 파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키티에게 첫눈에 반한 세균학자 월터는 중국 상하이로 출발하기 전 급하게 청혼하여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갑니다. 이 당시 중국은 인민 혁명과 정치 혁명이 소용돌이치며 동서양이 따로 없이 모두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저 친정 집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월터의 청혼에 응한 뒤,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온 키티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늘 독서를 즐기고 연구에 몰두하며 내성적인 성격의 남편 월터가 자신의 기대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따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다가 사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외교관이자 불륜 전문가 챨리와 급속히 사랑에 빠집니다. 늘 자신에게 무심한듯 보이는 남편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열정을 보이는 매력적인 유부남 챨리가 진짜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신은 딱히 '쓸모'가 없어서 관심도 존중도 받지 못한다고 믿었던 탓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1920년대 중국은 전국가적으로는 국민당의 내부 분열 속에서 공산당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을 조직하면서 급속히 그 세를 모아가며 약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의 손이 닿지 않는 틈에 지방 여러 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군소 군벌들의 내전이 이어지고 있어서, 중국은 안팎으로 극심한 혼란과 분열의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1925년 5월 30일, 상하이에서 영국 경찰이 중국인 노동자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강경 진압하면서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중국의 반제국주의 운동과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홍콩, 광저우, 상하이 등지에서 대규모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갓 결혼한 아내의 배신을 알고 있었음에도 월터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의 분로를 누르고, 그저 자신의 연구와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콜레라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 오지 중의 오지인 시골 마을 메이탄푸로 지원하여 아내와 함께 들어갑니다. 챨스에게는 자신과의 사랑이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키티는 함께 가지 않으면 망신살이 뻗치는 이혼뿐이라는 남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남편과 함께 메이탄푸로 들어갑니다.
코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콜레라의 창궐과, 주저 없이 외국인들을 살해하려는 광란의 농민운동의 한가운데 서있는 메이탄푸에서 두 사람은 함께 험한 일들을 겪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고 키티는 남편의 조용하고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갑니다. 문제는 메이탄푸가 형편없이 낮은 위생 수준에, 오랜 전통인 생활 방식으로 인해 콜레라로 죽어나간 시체들을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가까운 강가에 그냥 그대로 매장해버리는 시골마을이라는 현실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콜레라의 한가운데서 마을의 위생관리 책임자로 파견되어 온 월터마저 콜레라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합니다.
주요 등장인물
- 월터 페인(에드워드 노튼) : 세균학자이자 의사입니다. 세균 연구를 위해 중국에서도 시골 오지에 퍼진 콜레라와 싸우기 위해 자원하여 헌신하는 인물입니다. 사랑 표현에도 서툴고 조용히 독서를 즐겨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아내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거처럼 남편도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합니다. 그렇게 불륜을 저지른 아내임에도 월터는 당장 이혼하고 아내를 버려 댓가를 치르게 하는 대신, 함께 시골로 들어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 길만이 그 당시 아내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진중하고 따뜻한 인간이었음이 영화 말미 그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키티 페인(나오미 왓츠) : 자신을 옭매는 친정과 주변의 사회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때마침 청혼하는 남자와 도피성 결혼을 합니다. 늘 말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진실한 남편을 오해하고, 자신에게 열정을 보여주는 바람둥이 불륜상대와의 사랑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가족이든 남편이든 혼외 정사의 상대이든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유아적이고 미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혁명이 소용돌이 치고 죽음의 콜레라가 창궐하여 생사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남편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쓸모가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
두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입니다. 서머셋 모옴의 소설 페인티드 베일은 출판연도가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화 되었고 2006년도에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가 주연으로 등장하여 다시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1920년대 중국 산골 마을의, 그야말로 숨을 멋게 하는 멋진 풍경들이 장면마다, 두 주인공의 갈등 위기마다 뒷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그 자연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한 인간들의 사랑, 어리석음이나 욕망의 충돌 따위를 조용히 압도하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역할을 다합니다. 서머셋 모옴이 밝혔듯이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인생이라고 불리는 오색 창연한 베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 베일이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온갖 환상과 실재, 증오와 용서 그리고 질투와 사랑 사이에서 우리는 번민하고 고통받고 또 화해하면서 살아갑니다. 영화는 두 시간이 넘게, 월터의 도착에 가까운 조용한 사랑과, 키티의 인간적 성장과 각성이 그 펄럭이는 베일과 함께 이어집니다. 훌륭한 영화가 어떻게 보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예로서 이 영화는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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