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룸 넥스트 도어'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알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2024년 최신 영화입니다. 올해 77세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현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 전직 배우이자 작가입니다.
마지막 존엄을 꿈꾸는 이야기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전직 종군기자 마사는 말기 암 환자로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고통이 심하고 회복의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다크 웹을 통해서 자살약을 구합니다. 항암의 결과로 병상 위에서 아무런 준비나 고귀함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대개의 사람들이 맞이하는 종말입니다. 그러나 마사는 자살약을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합니다.
혼자서, 그것도 온갖 추억과 생으로 가득한 일상의 장소 즉 집이나 병원의 침상 위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누구인들 항암의 마지막 결과물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초주검이 되어 마지막을 맞고 싶은 인간이 있을까 합니다만, 거의 예외 없이 현실의 우리는 그러한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현대의 법이 그러하고, 우리가 이룬 사회가 그러하고, 종교가 그러하며, 죽어가는 환자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그러한 까닭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에서 그에 대한 책까지 썼던, 오랜 친구이자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의 방문을 받고,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부탁합니다. 혼자서 죽는 것만은 원하지 않으니 자신의 마지막 길에 동행을 해 달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자살을 결행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곁에 함께 머물러 달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바로 옆 방에 머물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동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살 후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자살한 친구를 발견한 것처럼 꾸며서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
- 잉그리드(줄리안 무어 분) : 오래전 잡지사에서 마사와 함께 일했던 적이 있는 유명 작가이며 현재는 자서전 소설가로 활동하며 팬 사인회를 여는 모습으로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우연히 마사와 재회하게 되면서 불치병의 친구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도 맞서 보는 듯합니다.
- 마사(틸다 스윈튼 분) : 전쟁 기자가 직업인 탓에 거의 세계 곳곳의 온갖 비극과 죽음과 고통을 리얼하게 목격하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자신이 수없이 보아왔던, 고독하고 괴롭기만 한 죽음의 순간이 아닌, 아름답고 고귀하며 온전한, 자신만의 죽음을 맞고 싶어 합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평가
종군기자로서 마사는 필시 가장 위험한 삶과 죽음의 현장들을 자신의 삶의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항암에 애썼지만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마지막에 도달합니다. 이제 그녀는 불치의 질병이 자신을 죽이기 전에 먼저 자신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건 달리 말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선언입니다.
전쟁의 와중에 파리처럼 목숨을 잃어가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온 마사에게는 인간답게 고귀하게 그야말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마지막 그 무엇이었을 듯합니다. 현재 우리는 의학상 이미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까지는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강제적인 의료 상의 연명치료 정도만 여러 조건을 달아서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수준에 있습니다. 그것도 19세 이상의 나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조력사도 안락사도 허용되고 있지 않은 오늘 한국의 상황에서 '룸 넥스트 도어'에서 보여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죽음은 어쩌면 우리들 마음속에 숨겨진 마지막 희망이자 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이전 글 보기 ] '브로크백 마운틴' 사회적 편견으로 억압된 사랑, 인물 및 작품의 의미
'브로크백 마운틴' 사회적 편견으로 억압된 사랑, 인물 및 작품 평가
'동성애'나 '퀴어'와 같은 주제는 누군가에게는 극도로 거부감이 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고통이자 절규일 수 있습니다. 그 양편 어느 쪽도 아닌
annecy123.com
'영화, 라이프, 건강,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스토리가 가진 감동과 유머, 줄거리 및 평가 (0) | 2025.02.01 |
---|---|
‘세븐’ 인간의 7가지 치명적 죄악과 연쇄 살인, 줄거리 및 평가 (1) | 2025.01.31 |
'브로크백 마운틴' 사회적 편견으로 억압된 사랑, 인물 및 작품 평가 (2) | 2025.01.27 |
'화이트 로투스'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 흥미로운 삶과 인물 이야기 (1) | 2025.01.22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충격적인 실제 이야기, 줄거리 및 작품 평가 (1) | 2025.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