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의 스토리
‘The Good Liar’는 고령의 전문 사기꾼 ‘로이 코트니’(Ian McKellen)가 벌이는 두 개의 사기를 동시에 보여 주며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연애 사이트에서 베티를 콕 집어 타깃으로 삼아 연애를 시작하고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동시에 또 하나의 해외 투자사기 행각을 진행합니다. 일단 투자 사기의 표적이 된 브린을 자신의 팀을 동원하여 속여 넘겨 거액을 갈취하는 방식입니다. 브린이 희생자가 되었던 투자 사기극은 브린으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는 사기팀의 일원으로 믿게 하였기에 가능했던 사기였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사기를 당하는 것보다, 내가 사기를 치는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모든 것이 사기임을 알아챈 브린이 나타나 로이의 뒤를 쫓자 로이는 달려오는 지하철 앞으로 브린을 밀어버립니다. 주저함도 없고 매 순간이 번개같이 상황이 꾸며지면서 살인 사건은 그저 단순한 자살 사건이 돼버립니다.
부유한 미망인 ‘베티 맥리시’(Helen Mirren)는 다정하고 따뜻한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로이는 전문 사기꾼답게 여러 가지 속임수와 조작을 동원하여 그녀의 일상에 깊이 침투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사기극에서 벗어나며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브린에게 사기를 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로이는 베티의 전재산을 횡령하려 합니다. 베티는 손자의 만류와 의심 가득한 추궁에도 불구하고 로이가 원하는 대로 전 재산을 로이와의 공동 계좌로 송금합니다.
베티는 로이가 벌인 로맨스 스캠의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베티는 오히려 로이에 대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그의 뒷조사를 해왔고 손자라고 존재도 실제 손자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살고 있는 집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으며 로이를 상대로 사기를 치기 위한 세트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로이의 과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어두운 역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어린 십 대 나이에서부터 시작해서 거의 평생에 걸쳐 오랜 시간을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현재 그의 신분 로이 코트니 역시 오래전 사고로 죽은 파트너의 신분을 몰래 가로채어 이용해 온 것입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성정이 잔인하고 복수를 즐겨 하며 위선을 진심으로 포장하는 데에 탁월했던 로이였기에 그러한 인생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베티 역시 자신의 과거를 로이에게 숨기고 있었는데, 로이의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그에 대한 평생에 걸친 복수전 준비라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범행 동기가 있었던 탓입니다.
영화의 후반 부, 베티는 로이를 심리적, 법적으로 몰아세우며 60여년 전 베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로이가 저지는 오래 전의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사기극’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도덕적 복수극’으로 극적인 전환을 보여 줍니다. 노년의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대결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 내내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를 감춘 두 인물 사이의 복잡한 과거와 숨겨진 진실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며 몰입하게 만듭니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믿고 나누는 대화와 표정, 그리고 장면마다 관객에게만 드러나는 진실의 얼굴은 매우 엄혹하고 비정하며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2. 주요 등장인물
- 로이 코트니 (Ian McKellen): 노련하고 교활한 사기꾼으로서 수십 년간 거짓 신분으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나이를 먹고 이제 친절하고 점잖은 척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나 혹은 필요한 경우에는 더없이 냉혹하고 잔인한 성격을 지난 범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어린 10대 시절부터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왔음이 영화 후반에 드러납니다.
- 베티 맥리시 (Helen Mirren): 지적이고 여유 있는 부유한 미망인으로 우아하게 등장합니다만, 과거의 트라우마에 얽힌 채, 평생의 비밀을 간직한 인물입니다. 로이의 정체를 밝혀내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도록 합니다. 영화 후반부의 그 많은 반전들은 그녀의 입을 통해 그녀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복수를 위해 그녀가 보내온 시간이 얼마나 오랜동안이었는지 밝혀집니다. 로이가 브릿에게 저질렀던 것과 유사하게, 베티는 로이가 자신의 사기극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 스티븐 (Russell Tovey): 베티의 손자로, 로이를 처음부터 의심하고 할머니 베티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며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지적이며 신중한 인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사기꾼 로이의 정체를 파헤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3. 감상 포인트
‘The Good Liar’는 2015년 니콜라스 시얼의 동명 소설을 2019년에 빌 콘돈이 프로듀스하고 제프리 해쳐가 각본을 써서 영화화되었습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사기극 범죄 스릴러의 요소들이 전개되어 가다가 어느 순간 심리극과 반전극의 요소를 섞어가면서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특히 노년의 남녀 두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젊고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들 중심의 여타 범죄 스릴러물과 차별화됩니다. 이언 맥켈런과 헬렌 미렌이라는 영국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들에 의해 조용조용 펼쳐지는 심리전 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범죄 폭력과 살인은 조용 조용하지 않습니다. 연기력과 분위기 연출 면에서는 두루 호평을 받았지만, 일부에서는 반전이 다소 부자연스럽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의 사기 범죄 장면들과 살인도 아주 즉흥적으로 손쉽게 만드는 스토리 전개는 훌륭합니다. 연기파 배우들의 내면 연기에 집중한 영화로서, 특히 헬렌 미렌의 존재감은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흥행 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약 3,4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거두었고, 거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노년의 두 주인공을 중심 인물로 내세운 스릴러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 가지, 영화의 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로이가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순간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큰돈을 한 번씩 잃게 되는 방식으로 연출된 것이 너무나 끔찍합니다. 어떤 악한 인간은 애초에 달라질 희망이 없는, 근본부터 아예 답이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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