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라이프, 건강, 삶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일방적 관계 맺기의 파국에 관하여

by 킴젬프 2025. 4. 13.

29년 간의 결혼 생활,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많은 것들을 덮어버릴 만큼 긴 시간이겠습니다. 아내는 의심 없이 그렇게 믿고 있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늘 말이 없는 남편은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끈질기게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이 없는 남편은 이미 자신의 응답이 아내를 바꿀 수 없음을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2019년에 만들어진 영화 호프갭(Hope Gap)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줄거리

'호프갭'이라는 멋진 바닷가 근처에서 갓 대학에 들어간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에드워드와 그레이스는 고등학교 교사와 주부로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부부입니다. 일주일 후면 결혼 29주년이 되는 이 부부의 일상 속 대화는 질문과 대답이 서로 맞지 않고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는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대를 질책하거나 비꼬거나 하는 식의 반응이 대화 속에 묻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 속의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맹렬한 말싸움으로 끝이 납니다. 

 

아내는 말꼬리를 잡아서라도 대화도 소통도 하려 들지 않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의 진심을 알고 싶어합니다. 아내의 그치지 않는 질문 공세, 대화 시도에 신물이 나는 남편. 남편은 아내의 일방적이고 밀어붙이는 대화 방식에 이미 오래전부터 방어적이고 표면적인 반응으로 일관합니다. 아주 불편한 상황으로 몰리면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얼버무리고 자리를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29년을 보낸 후 어느 날, 남편은 아들에게 털어 놓고 말합니다.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남편, 부족한 남편이라고 느낀다고 말합니다. 아내 앞에서는 자꾸 위축되고 불편해지고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학생 상담 차 만나게 된 학부모 안젤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집을 나가겠다고 밝힙니다. 안젤라와 있으면 자신은 있는 그대로 온전하며 편안하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앙심 깊은 아내 그레이스는 다 자라 성인이 되어 독립한 아들에게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고 교회에 나가라고 주장합니다. 아들이 혼자 독립해 나가 살고 있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 단정합니다. 남편도 아들도 자기들의 기분과 상황을 반복해서 말해주지만 그레이스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판단과 결론이 당사자들보다 더 정확하고 틀림이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그레이스는 자신이 느낄 수 있게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남편에게 청해 보지만 남편은 끝내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소통, 진정한 결혼을 원하는 그레이스는 남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식탁을 뒤엎어 버립니다. 그 다음 날 에드워드는 짐을 챙겨 집을 나갑니다. 남편이 자신을 떠나 버린 현실을 그레이스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며칠 후 몸을 일으켜 남편이 나가 살고 있는 여자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 여자를 만나고 나서야 현실을 자각합니다.

 

대학에 입학한 아들 제이미는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진전이 되지 않아 애를 태웁니다. 자식을 매우 사랑하는 부모의 존재에 감사하지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엄마를 떠나간 아버지와, 소통이 어려운 데다가 급작스럽게 혼자 남겨진 엄마 사이에서 상처 입고 괴로워합니다. 자신이 곁에 없어야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며 엄마를 떠나는 아버지를 잡을 수 없고, 아버지가 이미 수년 전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를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등장 인물의 성격

  • 그레이스(아내, 아네트 베닝 분) : 남편이 집을 나간 후 ‘I  LOVE  YOU’ 라고 메모를 적어서  온 집안 구석구석에 넣어 둡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이 돌아와 메모를 읽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나가지 않을 거라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예전의 남편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작은 수컷 강아지를 한 마리 구한 뒤, 남편의 이름을 붙이고 굴러라, 기다려라, 훈련시키며 현실감을 찾고 남편이 없  삶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 에드워드(남편, 빌 나이 분) : 거의 한 세대,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아내와 함께 지냈으나 우연히 알게 된 안젤라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자신이 더 이상 불완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내 그레이스가 남편의 사랑이 식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듯, 에드워드 역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남편입니다.   
  •  제이미(아들, 조쉬 오코너 분) : 부모의 별거와 이혼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며 새삼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제이미는 어릴 적 부모와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친구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섬세하고 여린 성격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여자를 만났다며 가출한 아버지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아들을 비난하며 몰아붙이는 엄마의 상처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작품 감상

 

가족이나 부부 간에 나누는 일상 대화라는 것이 반드시 어떤 결말에 도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깊은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더불어 공감하고 이해와 진심 어린 응원 같은 것을 원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레이스는 자기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상대방을 판단합니다. 남편과 아들과의 진심 어린 교감과 소통을 원하면서도 자신의 방식과 태도에 심각한 잘못이 있다고는 깨닫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은 나의 소통 방식은 문제가 없는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내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포스터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포스터

[이전 글 보기] '허트 로커'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세상, 작품 제작 과정 및 평가

 

'허트 로커'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세상, 작품 제작 과정 및 평가

적진 한가운데, 폭탄이 발견되면 언제 총알이 날아와 박힐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현장에 투입되는 폭탄 제거반에 대한 헌사 영화입니다. 폭탄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터져버리는 순간이면 그저

annecy123.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