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 한가운데, 폭탄이 발견되면 언제 총알이 날아와 박힐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현장에 투입되는 폭탄 제거반에 대한 헌사 영화입니다. 폭탄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터져버리는 순간이면 그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들의 걸음걸음을 함께 걸으며 이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숨이 저절로 멈춰지는 많은 순간은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 긴박하고 어질어질한 순간만이 아닙니다.
영화 스토리
2004년의 이라크 전쟁으로 파괴되고 허물어져가는 바그다드의 어느 거리, 건물의 창가에 서로를 밀치며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전쟁이 친절하지 않듯이, 영화 역시 느닷없이 뒤통수를 때리고 사람을 극도의 긴장과 광란 속으로 순식간에 몰아넣습니다. 서로 말이 통했다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듯, 이라크 반군과 폭탄 해제팀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총부터 먼저 들이밀고 그리고 폭탄을 터뜨려 서로 죽이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시합니다.
어디든 예외가 있는 법. 군부대 기지 주변에서 불법 포르노 영화 DVD를 미군들에게 팔고 있는 거리의 이라크 소년 베켐은 영어원어민인가 싶을 만큼 훌륭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움직이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이 들 정도의 엄청난 중무장을 하고 폭탄을 향해 다가가 작업하는 폭탄해제팀의 윌리엄 제임스는 쓰레기로 범벅인 길거리 구석을 걸어가고 있는 길고양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폭탄 해체반이 노상 폭탄만 상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막 한 복판에서 작전 수행하면서는 거의 영화 ‘enemy at the gate’ (2001년 발표작)에서 보았던 소위 ‘전설의 스나이퍼’ 수준의 인내와 끈기와 조심성을 보게 됩니다. 사막의 지글거리는 태양과 먼지아래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 안마저 바작바작 타 들어겁니다. 군 부대 내의 정신과 의사이자 카운슬러인 캠브리지 중령은 한 부대 안에서 함께 생활하지만 총알과 폭탄이 관통해서 사람이 즉사하는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의사 답게 부대원들의 정신 건강을 우려하고 도움을 주려 애쓰지만 부대 밖의 현실은 부대원이 군복을 입은 채 샤워를 하게 되면 핏물이 철철 흘러내리는 식입니다.
순수하고 따스한 마음의 이 의사선생은 우연히 부대 밖 임무 현장에 따라나섰다가 끔찍한 폭탄 테러에 고스란히 희생됩니다. 제임스에게 DVD를 팔면서 능숙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던 소년 또한 배 속에 폭탄을 품고 죽은 채로 제임스에게 발견됩니다. (영화 후반부에 DVD 소년 베켐은 사실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 죽은 아이는 제임스의 오해였음이 밝혀집니다.)
폭탄을 사용하여 소년의 몸과 반군의 은신처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려 하다가 제임스는 어느 순간 마음을 바꿉니다. 폭발을 막아야 하는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그것도 자신 탓에 죽은 작은 소년의 몸을 산산이 조각낼 수 있었을까요. 그 대신, 본인이 직접 소년의 배를 열고 폭탄을 끄집어 낸 후에 시신을 현지인들에게 인도합니다.
어느 이틀만 더 버티면 임무가 끝나는 날. 도로 한복판에 온 몸에 폭탄을 두른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살려 달라며 울부짖습니다. 반군의 만행으로 죄 없이 희생되는 수많은 민간인들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야말로 미군을 가까이 유인해 더 많이 죽게 하기 위한 ‘자살 폭탄테러’일 수도 있지요.
제임스는 주변 팀원들과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폭탄을 제거하려 하다가 시간부족과 너무나 많이 설치된 자물쇠들로 인해 실패하고 맙니다. 전장에서의 매일은 주사위를 던져 생사가 갈라지는 것처럼 너무나 가볍고, 알 수 없고, 내 의지와 무관한 우연에 불과하게 흘러갑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시리얼을 사야 하는데, 제임스는 끝없이 늘어선 시리얼 박스들 앞에 서서,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 앞에서 당황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와 365일 동안 폭탄 해체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쟁의 폐허 위에서 폭탄을 향해 걷어 갑니다.
주요 등장인물
- J. T. Sanborn (Anthony Dwane Mackie 분): 해체팀의 리더. 폭탄 해체팀에 들어오기 전에는 정보부에서 수년 간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안전하게 팀원들을 보호하며 업무를 수행하려 노력하는 Sanborn 병장으로서 극의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는 함께 일하던 해체 팀의 리더를 폭탄 해체 현장에서 잃었는데 사망한 이 대신에 새로 투입된 인물이 William James 입니다.
- William James ( Jeremy Lee Renner 분) : 귀가 찢어질 듯한 롹음악을 즐겨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주변과 잘 소통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팀 리더 Sanborn을 비롯한 팀원들은 위험하고 급박하기 그지없는 폭탄 해체 임무 현장에서 Sanborn의 지휘명령에 잘 따르지 않는 제임스 때문에 곧잘 위험스런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제임스가 소형 카메라 로봇을 내보내어 폭탄의 상태를 살피거나 자신의 몸부터 먼저 사리는 대신, 직접 폭탄 앞으로 돌진하는 스타일인 탓입니다.
- Owen Eldridge ( Brian Timothy Geraghty 분) : 폭탄 해제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정작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부대 내 정신과 의사 캠브리지 중령으로부터 카운셀링을 받고 있습니다.
작품 제작 과정 및 평가
저널리스트이자 영화 제작자 및 각본가인 마크 보올이 폭탄해제팀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면서 실제 몸으로 겪은 전쟁의 민낯을 각본으로 옮겼습니다. 소자본의 독립영화로 2008년도에 이 영화가 제작되었고, 미국 국회 도서관의 요청에 따라 2020년도부터 미국 국립 영화보존 위원회(NFPB)에 이 영화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것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영상미에서도 이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총 9개 부분의 아카데미 상에 지명되었고, 최고 영화상, 감독상, 최고 각본상 등을 포함하여 6개 부분에서 수상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멋진 전쟁 영화는 Kathryn Ann Bigelow라는 여성 감독이 감독하여 수상한, 최초의 ‘최고 영화상’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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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월드’는 모두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그 영화의 제목은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설가가 쓴 소설이든, 화가가 그린 그림이든, 예술가가 만든 예술작품이든. 아마도 제각기 다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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